엔비디아와 HBM에 가려져 있지만, AI 데이터센터 한 대를 뜯어보면 수만 개의 부품과 기판이 칩을 떠받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회사가 삼성전기다. 한때 ‘갤럭시 부품사’로 불리던 이 회사는 이제 스스로를 ‘AI 전문 부품사’로 정의한다. 단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AI 서버에 들어가는 기판과 부품을 하나의 솔루션으로 묶어 공급하겠다는 전략(장덕현 사장, CES 2024)이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2025년 연 매출 11조 3,145억 원, 영업이익 9,133억 원으로 창사 최대를 기록했고(2026년 3월 정기주총), 2026년 1분기에는 사상 처음 분기 매출 3조 원을 돌파했다(매출 3조 2,091억 원·영업이익 2,806억 원, 2026년 4월 30일 IR). 성장의 엔진은 분명하다 — AI다.
왜 지금 삼성전기인가 — AI를 떠받치는 4개의 축
① MLCC: AI 서버 한 대에 ‘2만 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전류를 안정시키는 초소형 부품이다. 스마트폰 한 대에 약 1,100개가 들어가는데, AI 서버에는 2만 개 이상이 탑재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AI 가속기의 전원단에 고신뢰성 MLCC가 대량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AI 서버용 MLCC 점유율은 약 40%로, 1위 무라타(약 45%)를 바짝 추격하는 양강 구도다(국내 언론 인용, 2025~2026년). 전장(자동차)과 서버용 고부가 비중은 약 44%까지 올라왔다.
② FC-BGA: AI 가속기를 올리는 ‘땅’
반도체 패키지기판(FC-BGA)은 GPU·CPU 같은 칩이 올라앉는 고다층 기판이다. 서버용은 PC용보다 면적이 4배, 층수가 20층 이상으로 난도가 높다. 삼성전기는 AMD·구글·아마존·브로드컴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을 추진 중이다(더벨, 2025년). 베트남에 약 1조 8천억 원을 투자해 AI 서버용 라인을 키우고 있으며, 2026년 FC-BGA 매출 2조 원 돌파 전망이 나온다.
③ 유리기판: 차세대 패키징의 ‘게임체인저’
유리기판은 휘어짐이 적고 대면적·고다층에 유리해, 1,000W급 AI 칩과 HBM 집적의 해법으로 거론된다. 삼성전기는 세종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일부 고객사에 시제품을 공급 중이며, 일본 스미토모화학과 합작사(JV)를 세워 핵심 소재까지 내재화하고 있다(2025년 11월). 회사의 공식 입장은 2027~2028년 본격 상용화다.
④ 실리콘 커패시터·전장 카메라
MLCC를 대체·보완하는 실리콘 커패시터는 미국 AI 가속기 업체 마벨(Marvell)에 첫 납품(2025년)을 시작했고, 약 1조 5천억 원 규모 수주 소식도 전해졌다. 전장 카메라 매출 비중은 2023년 약 10%에서 2025년 약 24%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1년 · 5년 · 10년 — 삼성전기가 준비하는 미래
1년(2026년): 풀가동과 선제 투자
FC-BGA 주력 라인은 하반기 100% 풀가동, MLCC 가동률은 95% 이상이다. 회사는 2026년 설비투자를 전년보다 늘려 ①AI 서버용 FC-BGA 증설 ②고부가 MLCC 해외 신공장 ③전장·로봇용 카메라 거점에 투입한다(2026년 1월 컨퍼런스콜). 유리기판 합작법인도 상반기 내 설립이 목표다.
5년: 유리기판 양산과 신사업 상용화
중기 최대 베팅은 유리기판이다. 2027년 이후 시장이 열리면 삼성·SKC·인텔의 상용화 경쟁이 본격화된다. 여기에 전고체전지 소재(2026년 양산 목표), 하이브리드 전장 렌즈, 그린수소(SOEC) 등이 단계적으로 줄을 잇는다. 사업 축은 AI 서버·전장(EV)·로봇 셋으로 재편되고 있다.
10년: ‘Mi-RAE’와 피지컬 AI
삼성전기의 장기 비전은 Mi-RAE(미래) 프로젝트 — Mobility(전장)·Robot(로봇)·AI/Server·Energy의 4대 키워드다. 특히 ‘피지컬 AI(휴머노이드)’를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하고, 보유한 센서·카메라·기판·MLCC 역량을 로봇에 접목한다. 로봇 관절 구동부품(액추에이터) 진출을 위해 노르웨이 모터 기업 알바 인더스트리즈에 투자했고(2026년 1월), 일부 휴머노이드 부품은 2026년 하반기 양산을 예고했다.
경쟁 구도 — 누구와 싸우는가
| 사업 | 삼성전기 위치 | 주요 경쟁자 |
|---|---|---|
| MLCC | 글로벌 2위(약 23~24%), AI서버 약 40% | 무라타(1위), TDK·다이요유덴·야교, 중국 펑화고분자(부상) |
| FC-BGA | 후발이지만 AI서버급 양산·수율 우위 | 이비덴(1위)·신코덴키·유니마이크론·AT&S |
| 유리기판 | 추격 진영(양산 전) | 앱솔릭스(SKC)·인텔 선두권, LG이노텍 |
| 카메라모듈 | 글로벌 3강(약 15~20%) | 써니옵티컬(1위)·LG이노텍 |
MLCC는 무라타와의 양강, FC-BGA는 일본·대만 강자를 추격하는 구도다. 유리기판은 아직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신생 시장으로, 실물 진척에서는 SKC 자회사 앱솔릭스가 앞서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점유율 수치 일부는 2차 인용·추정치다.)
리스크 — 호황의 이면
지금 삼성전기는 분명한 호황 구간이다. 그래서 리스크의 성격도 “실적이 나쁘다”가 아니라 “좋을 때 이미 반영된 것의 되돌림”에 가깝다.
- 밸류에이션 부담: 주가가 최근 6개월 약 +518% 급등하며(2025년 11월~2026년 5월), 후행 PER이 100배를 크게 웃돈다는 분석이 나온다. ETF·패시브 수급이 펀더멘털 이상으로 주가를 밀어올렸다는 비판도 있다. 증권사 목표주가는 57만 원~300만 원으로 5배 이상 벌어져 있어, 컨센서스 자체의 불확실성이 크다.
- 사이클 전환: AI 수요가 범용(스마트폰·PC) 부진을 가려주고 있다. AI 투자(capex)가 둔화되면 가려졌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 카메라(비중 약 33%)는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다.
- 대규모 투자 부담: 향후 2년 capex가 약 7조 6천억 원으로 추정된다(DB증권). 자본집약적 사업 특성상 가동률이 꺾이면 감가상각 고정비가 수익성을 빠르게 갉아먹는다.
- 중국 저가 공세: 한국·일본이 고가 시장으로 이동하는 사이 중국 MLCC 업체가 중저가 점유율을 키우고 있다.
- 신사업 지연: 유리기판·전고체 등은 상용화가 2027년 이후다. 일정이 밀리거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면 성장 동력이 약해진다.
편집팀의 시선
삼성전기는 ‘AI 부품’이라는 구조적 성장 서사를 가진 몇 안 되는 한국 기업이다. MLCC·FC-BGA·유리기판·실리콘 커패시터로 이어지는 4개의 축은 AI 데이터센터가 커질수록 함께 커진다. 다만 이 성장 서사의 상당 부분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는 점, 그리고 호황 사이클은 반드시 한 번은 숨을 고른다는 점을 같이 봐야 한다. ‘좋은 기업’과 ‘지금 좋은 주가’는 다른 질문이다. 구조적 수요와 밸류에이션 부담을 양손에 올려두고, 자신의 투자 시계(視界)에 맞춰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본 콘텐츠는 공개된 자료(회사 IR, 증권사 리포트,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정리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수치는 작성 시점(2026년 6월) 기준이며 변동될 수 있고,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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